부여 별서 Buyeo-Byeolseo
굽이굽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마을의 느즈막한 저녁, 마을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먹색의 돌담들을 따라 S자로 마을을 가르는 좁은 돌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우리가 찾는 대지 한 켠의 오랜 집에서 하얀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집은 건축주가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한식 기와집이던 것이 파란 양철 지붕과 적벽돌로 바깥을 둘러 리모델링한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집 앞으로는 농기구를 보관하던 창고와 농사지은 마늘을 걸어 말리던 헛간이 있었고, 이들이 둘러싼 작은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서는 헛간과 창고 덕에 집 앞의 넓은 밭과 건너의 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농사 지는 것들을 말리고 정리하고, 농기구를 보관하거나 주차를 하는 실용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헛간을 넘어 마늘밭으로 쓰고 있는 곳으로 내려오면, 월명산부터 월하산까지 겹겹이 이어지는 풍경과 마을의 모습이 일품이었다.
우리는 이 풍경을 새집에 넣어주고 싶었다. 별채를 짓기 위해 헛간과 창고는 철거해야 했기 때문에 본가와 새집에서 이 풍경을 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항상 헛간으로 막힌 풍경만 모습만 봐 오던 건축주는 처음에는 “시골이 다 똑같죠~”하며 이 땅이 가진 풍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이 생경한 우리에게는 여기서 볼 수 있는 산과 밭의 풍경, 대지 옆 밤나무와 대나무 숲이 이 집을 풍요롭게 해 줄 보물로 보였다.
새 집은 친구와 친지가 종종 찾아오지만, 기본적으로 이 집은 건축주 1인이 거주하는 싱글하우스이며, 주말에 찾아와 쉬는 주말주택이다. 혼자의 삶만을 담으면 되었기 때문에 집은 싱글라이프에 집중하여 단촐하게 설계하였다. 처음에는 본채가 오래되었기에 주생활을 모두 새집에서 하는 개념으로 2층집으로 진행하다 결국 1층집이 되었고, 본채와 공존하는 별채로 역할하게 되었다. 거실과 주방, 침실, 서재, 욕실이 전부다. 세탁과 조리 등으로 필요한 다용도 공간은 본채에서 쓰기로 했고, 친구들과의 저녁을 위한 간단한 요리를 위한 깨끗한 주방을 두기로 했다. 침실도 친지들이 많이 내려올 경우 본채에서 자면 되기에 본인 또는 때때로 조카들만 잘 수 있도록 작은방이면 충분했다. 욕실은 본가가 사용이 불편하기에 샤워실을 갖춘 깔끔한 공간이면 됐다. 다만 욕심을 내는 공간은 서재로 전문서적의 집필을 하기 위한 집중형 공간과 편안히 책을 보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카페형 공간이었다. 서재는 주방/거실을 합친 면적만큼 크게 계획되었고, 주생활공간의 반대편에 배치하여 별채 속 별채같이 두었다.
이 집에서 중요한 것은 집 자체보다 마을과의 관계, 본채와의 관계다. 나지막한 돌담을 따라 대체로 1층의 집들이 위치한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새로 지어지는 집이 마을에 무게를 더하거나 존재를 자랑하지 않아야 했다. 새 집으로 인해 본채가 위축되거나 가려져서는 안 되고, 본채에서 본래 사용하던 마당과 밭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랬다. 농가로써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운기나 농기구들의 사용이 새 집으로 인해 불편하게 되지 않아야 했다. 그러면서 새 집은 친구나 친지들과 시간을 보낼 프라이빗한 마당이 필요했고 본채의 왕래가 용이해야 했다.
집의 배치는 이러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본채의 주방에서 확장된 새로운 주방/식당/거실이 될 수 있도록 했고, 본채 앞 마당 텃밭에서 일하거나 농기구들을 정리하고 잠시 땀을 식힐 공간을 마련했다. 자연스럽게 집은 디귿자 형상이 되었고, 이로인해 만들어진 후정은 밤나무 숲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라이빗한 마당이 되었다. 그리고 집의 끝, 대나무숲 앞에 서재를 두었다.
작은 집이지만, 사색하는 집을 원했던 처음 희망사항에 집중하여 몇가지 바꿔가며 공간적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장치를 두었다. 후정을 향한 전면창의 6짝 덧문은 방칼라이 천연목으로 만들었다. 전면창을 원하면서도 부재시나 서쪽 해가 내리꽂히는 여름에는 닫아둘 수 있고, 6짝은 여러 방법으로 개폐하며 후정의 표정과 내부에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거실의 4짝 한식미서기문은 전체 오픈형으로 모두 열어 숨겨둘 수 있도록 했다. 거실과 주방을 넓게 써야 할 때는 전체 열어두고, 게스트룸이 필요할 경우 모두 닫아 방으로도 쓸 수 있도록 했다. 경우에 따라 한쪽으로 밀어두거나 부분적으로 열어 주방과 부분적 분리를 할 수도 있어 오픈공간이지만 필요에 따라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다. 서재 또한 한식도어로 하여 특히 집중하여 글을 쓸 때는 닫아 독립성을 갖도록 했다.
건축주는 어릴 적 한식집에 살았던 기억이 좋아 집 안에서 서까래를 볼 수 있기를 바랬다. 설계를 하면서 집이 철근콘크리트 구조여서 목구조인 부분과 RC구조인 부분을 나눠 시공해야할지 서까래나 목재 노출을 인테리어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집이 서는 대지의 레벨 구성과 우오수관 연결 등의 문제로 집의 바닥레벨을 피트를 두고 올려야 하는 상황과 단층집이라는 조건 속에서 우리는 RC구조와 목구조를 섞어 쓰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전체 RC조로 결정하였다. 그러다보니 실내의 서까래와 목재천정은 인테리어로 해결하게 되었다. 목구조에서 볼 수 있는 서까래와는 다른 분위기를 주지만, 이 때문에 지붕의 경사도와 수종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우리는 건축주가 좋아하는 삼나무를 써서 마감하였고, 이로써 집 안에 삼나무향이 가득하게 되었다.
후정 및 현관, 주방 앞에는 처마를 두었는데, 어릴 적 본채가 한식이었을 때 기억을 상기하거나 비와 해를 피하며 머물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이 집은 천연목으로 외부를 일부 마감하였는데, 목재의 변형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로 북쪽, 처마 밑에만 목재를 사용하고 기둥 하단, 덧문 하단은 데크로 처리하고 띄워 물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처마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목재 기둥 및 덧문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선홈통과 트렌치 계획을 상세하게 하였고, 빗물이 데크면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데크 하단에 묻어 마당으로 배수하도록 했다.
부여별서는 시골스러움으로 정리되었다. 700평의 대지에서 집 외의 외부 공간에 특별한 조경은 하지 않았고, 집과 밭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본채 앞 농사를 위해 실질적으로 사용될 마당만 시멘트로 정리하여 경운기 및 농기구들을 두었다. 그럼에도 후정의 벤치나 서재의 책상에 앉으면 무성하게 자란 수풀과 밤나무숲이 보여 마사토로 정리한 마당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대나무를 심기로 해 마련된 포치 옆 포켓정원은 자츰 대나무와 석등으로 채워질 것이며, 건축주가 하나씩 심고 있는 나무들은 곧 키높이보다 높이 자라날 것이다. 건축주의 시간 속에 남겨진 것들로 차츰 집은 푸르러질 것이다.
에이플랫폼
전원속의 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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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개요
대지 위치 : 충청남도 부여군
대지 면적 : 1,590.00㎡
건물 규모 : 지상1층
건축물 용도 : 단독주택
연면적 : 118.80㎡
건폐율 : 7.47%
용적률 : 7.47%
주차대수 : 해당없음
구조 : 철근콘크리트, 목구조
건축설계.인테리어 : 갓고다건축사사무소
구조설계 : 제이엠구조
전기.기계설계 : (주)대광엔지니어링
시공 : 다온건설
사진 : 노경